박정수 씨는 부산 해운대 뒷골목에서 작은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십니다. 62세이시고, 아내와 이혼하신 지 8년이 되셨습니다. 두 자녀는 각각 서울과 울산에 자리 잡으셔서 내려오시는 일이 드뭅니다.
이혼 후 처음 몇 해 동안 박정수 씨는 일과 집만을 오가셨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았고, 새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분의 말씀입니다.
변화의 시작 — 이웃의 한마디
변화는 2023년 가을, 사무소 옆 찻집의 주인께서 건넨 한마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화요일 저녁에 바둑 모임이 있는데, 한 번 오시겠습니까. 회원 한 분이 자리가 빠져서요."
박정수 씨는 젊은 시절 바둑을 꽤 두셨지만 20년 가까이 손을 놓고 계셨습니다. "아직 둘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첫 화요일에 나가 보셨다 합니다.
모임 장소는 해운대 달맞이길 초입의 작은 기원이었습니다. 여덟 분이 계셨고, 연령대는 5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까지였습니다. 그중 한 분이 박정수 씨와 같은 세대의 여성분이셨습니다. 최은숙 씨. 광안동에 사시는 59세 분이셨습니다.
바둑판 위에서 먼저
두 분은 그날 1급과 1급으로 한 판을 두셨습니다. 박정수 씨는 묘하게 긴장되셨다 합니다. "오랜만에 여성분과 오래 마주 앉은 자리였습니다. 한 수 한 수가 평소보다 조심스러웠습니다."
결과는 최은숙 씨의 반집승. 박정수 씨는 복기를 하면서 자신의 집 계산 실수를 발견하셨습니다. "집 하나가 남는 줄 알고 두었는데, 계가해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이 장면을 "자신을 너무 오래 과신한 시간"의 은유처럼 지금도 떠올리십니다.
모임 밖에서의 첫 대화
두 분이 모임 밖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신 것은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1월의 어느 저녁, 모임이 끝난 후 비가 내렸습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으신 최은숙 씨께 박정수 씨가 우산을 내미셨습니다.
"광안동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합니다. 대신 "비가 그칠 때까지 앞 찻집에서 차 한 잔을 드시겠습니까"였습니다. 30분의 대화가 한 시간이 되었고, 그 사이 비는 멈췄습니다.
박정수 씨는 집에 돌아오시는 택시 안에서 "내가 아직 누군가와 이렇게 길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느끼셨다 합니다. 그 감각이 놀라우셨다 합니다.
서두르지 않은 6개월
두 분의 관계는 천천히 깊어졌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오직 화요일 모임과, 모임 전후의 커피 시간이 전부였습니다. 주말에 따로 만나자는 제안은 서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박정수 씨는 이 '서두르지 않음'을 지금도 가장 잘한 일로 꼽으십니다. "30대였으면 아마 한 달 만에 저녁 식사 제안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나이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매주 한 번 조용히 만나는 것이 더 귀했습니다."
첫 저녁 식사
첫 주말 저녁 식사는 6개월 만에, 광안리 해변의 한 작은 한정식집에서였습니다. 박정수 씨는 그 전날 저녁 머리를 자르고, 새 셔츠를 꺼내셨다 합니다. 60대 남성의 수줍음이었습니다.
두 분은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각자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박정수 씨의 이혼은 긴 갈등 끝의 결정이었고, 최은숙 씨의 남편은 2019년에 간암으로 떠나셨습니다. 두 분 모두 상대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들으셨다 합니다.
자녀 소개
박정수 씨의 큰 따님은 이 관계를 가장 먼저 알게 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소개할 뜻을 내비치시자 따님께서는 "제가 서울에서 내려올 테니 만나 뵙고 싶다"고 먼저 청하셨다 합니다.
만남은 해운대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최은숙 씨께서는 따님께 "아버님과 저는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은 인사만 드리고, 따님이 편하실 때 또 뵙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이 한마디가 따님의 경계를 많이 풀어 주었다 합니다.
지금 두 분의 모습
현재 두 분은 각자의 집을 유지하시며, 주중 화요일의 바둑 모임과 주말 한 번의 식사 혹은 산책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결혼 이야기는 아직 꺼내지 않으셨고, 양쪽 모두 꺼낼 필요를 느끼지 못하신다 합니다.
박정수 씨께서 최근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내와 20년을 살고 헤어졌습니다. 그 20년을 지운다고 지워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분과의 시간은 그 위에 새로 쌓는 시간입니다.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나이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분께
박정수 씨의 이야기에서 배우실 수 있는 한 가지는, 이웃이 권하는 작은 모임을 거절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데이트 앱만이 길은 아닙니다. 바둑, 서예, 합창, 등산, 자전거, 낚시. 당신이 젊은 시절 좋아하셨던 활동을 다시 꺼내 보십시오. 그곳에 그 활동을 같이 좋아하는 분들이 이미 모여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