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 씨는 2020년 봄에 남편을 떠나보내셨습니다. 마흔 해를 함께한 분이었습니다. 그해 가을부터 2024년 여름까지, 그분의 일상은 딸의 집과 성북동 자택을 오가는 단조로운 리듬이었습니다.
변화는 2024년 9월의 어느 목요일 저녁에 시작되었습니다. 산책길에 우연히 성북동 골목의 작은 독립서점 유리창에 붙은 포스터를 보셨다고 합니다. "목요 낭독 모임 — 누구나 환영."
첫 번째 목요일
김영자 씨는 세 번을 망설이다 네 번째 주 목요일에 문을 여셨습니다. 30대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면 돌아 나오리라 마음먹고 계셨다 합니다. 그러나 안에는 40대부터 70대까지 열두 명이 둥글게 앉아 계셨습니다.
그날 낭독 주제는 "내가 가장 여러 번 읽은 문장"이었습니다. 김영자 씨는 준비 없이 오신 터라 그저 듣기만 하실 생각이었습니다. 순서가 왔을 때 누군가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이상해 보일까 봐, 가방에서 꺼낸 수첩의 한 줄을 읽으셨습니다.
"봄이 오면 흙이 먼저 안다."
그 뒤에 말을 덧붙이지 못하셨습니다. 한참의 침묵 후, 건너편에 앉아 계시던 남성분이 "그 문장을 저도 오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이상준 씨
그 남성분은 62세의 이상준 씨였습니다. 10년 전 아내와 이혼하시고, 성북동에서 작은 건축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두 분은 그날 모임이 끝난 후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서점에서 산 시집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집 근처에서 가볍게 인사하고 헤어지셨습니다. 연락처도 주고받지 않으셨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김영자 씨는 수첩을 준비해서 다시 가셨습니다. 이상준 씨도 와 계셨습니다.
계단처럼 올라간 관계
두 분의 관계는 한 번에 깊어지지 않았습니다. 목요일 모임이 끝난 후 15분간 골목을 함께 걷는 것이 첫 계단이었습니다. 그다음은 모임 전 30분 일찍 만나 서점 근처 찻집에서 차 한 잔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두 분이 처음으로 모임 밖 시간에 만나신 것은 두 달이 지난 11월 말이었습니다. 김영자 씨의 제안으로 인사동 찻집에서 점심을 함께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영자 씨는 처음으로 남편 이야기를 하셨다 합니다.
이상준 씨는 듣기만 하셨습니다. 위로의 말을 서둘러 꺼내지 않으셨고, 자신의 이혼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그분과 보내신 40년이, 지금의 당신을 만드셨습니다. 저는 그 모든 당신을 존중합니다."
자녀들의 반응
김영자 씨에게는 두 따님이 계십니다. 큰 따님은 어머니의 새로운 만남을 조심스럽게 응원하셨지만, 작은 따님은 처음에 불편해하셨습니다. "아빠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김영자 씨는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작은 따님에게 이상준 씨를 소개하기까지 8개월을 기다리셨습니다. 첫 만남은 평창동의 조용한 한식당에서 세 분이 점심을 드시는 자리였습니다. 이상준 씨는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습니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셨을 식당이라 들었습니다. 함께 와서 영광입니다."
지금의 두 분
2026년 현재, 두 분은 각자의 집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주말에는 주로 이상준 씨의 작업실에서 함께 차를 드시거나, 북한산 자락을 걸으십니다. 결혼 이야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필요 없다고 느끼신다 합니다.
김영자 씨께서 저희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남편이 떠난 자리를 다른 분이 채운 것이 아닙니다. 제 안에 새로운 방 하나가 더 생긴 것입니다."
독자분께 전하는 말
김영자 씨의 이야기에서 배울 점은 한 가지입니다. 좋은 만남은 데이트 앱이 아니라, 당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공간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달, 동네의 작은 모임 한 곳에 문을 열어 보십시오. 네 번째 목요일까지는 들러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