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희 씨는 67세이십니다. 안동에서 평생을 사신 분으로, 고교 국어 교사로 정년퇴직하셨습니다. 남편은 2020년 겨울에 뇌졸중으로 떠나셨습니다. 두 따님 중 한 분은 대구에, 또 한 분은 안동 시내에 살고 계십니다.
이상우 씨는 69세이십니다. 경주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오래 일하시다, 은퇴 후 안동으로 이주하셨습니다. 부인과 15년 전 이혼하셨고, 아들은 서울에 있습니다.
두 분이 만나신 곳은 안동시의 작은 시민 합창단입니다.
합창단의 화요일 저녁
안동 시민회관 3층에서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진행되는 합창단은 50대부터 70대까지 스물다섯 분 정도가 모이는 모임입니다. 회비는 월 2만 원. 지휘자는 지역 음대 출신의 40대 여성분이십니다.
황순희 씨는 남편이 떠나신 후 2년이 지난 2022년 가을에 처음 문을 여셨습니다. 큰딸의 권유가 계기였다 합니다. "엄마, 집에만 계시지 마시고 이런 거라도 한번 해 보시면 어떨까요."
이상우 씨는 그보다 6개월 먼저 합창단에 들어와 계셨습니다. 두 분은 처음 석 달 동안 서로를 알아보지도 못하셨다 합니다. 합창단에서는 파트별로 자리가 나뉘어 있습니다. 황순희 씨는 소프라노, 이상우 씨는 베이스였습니다.
노래가 만든 첫 접점
두 분의 첫 접점은 '가곡의 밤' 연주회 준비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그해 12월에 안동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연주회를 앞두고, 모든 단원이 각자 짧은 독창 한 곡씩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황순희 씨는 "산유화"를 준비하셨고, 이상우 씨는 "명태"를 준비하셨습니다. 연습 시간 사이 쉬는 시간에 황순희 씨가 지휘자에게 발성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계실 때, 옆에 앉아 계시던 이상우 씨가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합니다. "저도 그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가래가 낀 것처럼 소리가 막혀서요."
이 한마디가 두 분의 첫 대화였습니다.
연주회 이후의 찻집
연주회가 끝나고 합창단 뒤풀이 자리에서 두 분은 길게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주로 교직 시절의 학생들 이야기, 국어와 역사가 교실에서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한 담담한 대화였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이상우 씨가 황순희 씨에게 문자 한 통을 보내셨습니다. "안동 구시장에 오래된 한과 가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다녀오실 생각 있으시면 다음 주 토요일 오후 3시, 안동역 앞에서 뵙겠습니다." 제안의 문체가 교사다우셨다 합니다.
황순희 씨는 그 문자를 두 번 읽으시고, 따님에게 전화를 거셨다 합니다. 따님은 "엄마, 그분이 어떤 분인지 봐야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한과 사러 가시는 건 괜찮아 보이네요"라고 하셨다 합니다. 황순희 씨는 토요일에 나가셨습니다.
느린 겨울
두 분은 그 겨울 동안 네 번을 만나셨습니다. 모두 낮 시간, 모두 공공의 장소였습니다. 도산서원, 하회마을 근처의 한 찻집, 월영교 산책, 그리고 안동 구시가지의 작은 서점. 저녁 식사 자리는 봄이 되어서야 처음 가지셨다 합니다.
이상우 씨의 한 가지 원칙이 황순희 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합니다. "저는 앞에서 나란히 걷지 않습니다. 반걸음 뒤에서 따라갑니다." 이상우 씨의 말씀이었다 합니다. "제가 먼저 가면 당신이 불편하실 수 있으니까요."
자녀들의 첫 만남
두 분은 교제 1년 만에 양쪽 자녀들을 같이 모시는 자리를 가지셨습니다. 안동 시내의 한 한정식집이었습니다. 황순희 씨의 두 따님과 이상우 씨의 아들이 같은 테이블에 앉으셨습니다.
처음 한 시간은 다들 어색하셨다 합니다. 분위기가 풀린 계기는 이상우 씨의 아들이 황순희 씨께 "어머니께서 키우신 작은따님이 안동에 계신다니 저는 서울보다 안동에 자주 올 수 있어 다행입니다"라고 말씀드린 순간이었다 합니다.
혼인신고까지 2년 반
두 분은 교제 시작 2년 반 만에 혼인신고를 하셨습니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으셨고, 가족 열한 명이 모여 조용한 식사 자리로 대신하셨습니다.
현재 두 분은 황순희 씨 댁에 함께 사시되, 이상우 씨가 전에 사시던 오피스텔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아들을 위해 유지하십니다. 자산은 각자의 자녀에게 가는 것으로 유언장을 정리하셨습니다.
합창단은 두 분 모두 여전히 나가십니다. 자리는 여전히 소프라노와 베이스로 떨어져 있습니다.
독자분께
두 분의 이야기에서 배울 점은 여러 가지이지만, 한 가지만 꼽는다면 '목적이 없는 공간'의 힘입니다. 합창단의 목적은 노래입니다. 만남이 아닙니다. 그래서 만남이 찾아왔을 때, 누구의 조바심도 없었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도시에서 '목적이 없는 공간'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